본문 바로가기

해외동물원&야생공원/인도네시아 여행

인도네시아 여행(14) 족자카르타 4일차 - 보로부두르 사원((Borobudur Temple) & 메라피 화산(Merapi Volcano)

반응형

" 형님. 안 가요?" 

어둠 속에서 침대 머리맡을 더듬어서 겨우 집어든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온 조코의 목소리에는 얼마간의 불안감이 묻어있었다. 

 

새벽 3시 30분에 만나기로 한 것을 7시로 변경하자는 문자를 어제 저녁에 왓츠앱으로 보냈고 OK라고 답신을 했으면서도 새벽부터 호텔 인근에 와서 나를 기다리다 전화를 걸었나보다. 새벽부터 멀리에서 온 사람에게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경우가 아닌 것 같아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부리나케 고양이 세수를 하고 냉장고에 든 과자와 음료수를 챙겨서 호텔을 나왔다. 

 

시간 상으로는 보로부두르 사원의 일출을 보기에는 애매 할 것 같고,  일기예보를 보니 구름도 있는 듯 하여 일출은 안볼테니 천천히 운전하라고 하였다. 

 

4시를 갓 넘긴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이 보이길래 다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 같고 혹시 새벽 기도하고 연관이 있냐고 물으니 딱히 기도와는 연관이 없다고 한다. 그냥 새벽에 일어나 바삐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열린 차창사이로 새벽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이곳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선선한 바람이어서, 일기예보앱으로 확인하니 기온이 20℃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에는 20℃ 정도였던 기온이 일출 후 부터 서서히 올라 오전 10-11시 정도면 30℃ 정도 되고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가장 더운 32-33℃가 되는 것이 이곳의 기온인 것 같다. 

우리가 보로부두르 사원의 주차장에 도착을 한 시간은 5시 45분 전후였다. 아직 주차장 개방이 안되는 시간인지라 근처 식당에 가서 아침이나 먹기로 했다. 

 

도로변에 있는 식당 중 문이 열려있는 식당 아무데나 골라 식당 앞 공터에 차를 세우고 의자에 앉으니 인상 좋으신 사장님이 주문을 받으러 오셨다. 

 

나는 나시고랭(볶음밥)을 시켰고 조코는 미고랭(볶음면)을 시켰다. 매운 것도 괜찮냐고해서 매운 것도 괜찮다고 했다. 사실 내가 매운 음식을 즐기거나 아주 잘 먹는 편은 아니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맵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이라면 매끼니 안 먹으면 입안이 개운하지 않은  기본찬인 김치부터가 고추가루 범벅이니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찾아보기 힘든 외국에 나와서 맵부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5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사장님이 주문한 음식들을 내어왔다. 잘게 썬 양배추와 고추 위에 얇게 편 계란이 올려진 단촐한 볶음밥이었지만 맛은 괜찮았다. 하지만 고추의 매운 맛 때문인지 아니면 매운 맛을 내기 위해 다른 재료를 첨가 하였는지 모르지만 기대이상으로 매웠다. 볶음밥이 스쳐 지나가는 혀, 식도, 위장까지 아릴 정도였다. 한국의 매운 음식이 내는 매운 맛이 묵직한 한방이라면 이곳의 매운 맛은 예리한 매운 맛이랄까? 

밥을 먹은 이후에는 커피 한잔을 시켜 먹었다.

볶음밥, 볶음면, 커피 2잔을 먹고 지불한 비용은 43,000루피아. 한화로는 4천원이 되지 않는 돈이다. 그동안 족자에 머무르는 동안 말리오보로몰에서 대부분 식사를 해결하며 지불한 비용이 한끼에 6천-1만 2천원 정도였다면  번화가가 아닌 곳에 있는 식당의 비용은 그보다 훨씬 저렴한 듯 하다.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식당을 나와 보로부두르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6시 45분 정도였다. 이른 시간인지라 주차장은 휑하니 비어 있어고 주차장 인근 상점들도 아직은 장사 준비를 하지 않은 곳이 많은 상태였다. 

보로부두르 사원의 표는 두가지가 있다. 가이드를 동반하여 사원을 올라가 볼 수 있는 표( Temple Structure Ticket)와 사원은 올라가지 않고 주변만 돌아볼 수 있는 표(Temple Ground Ticket)이다. 

현지에서 표를 사는 것도 가능하고 온라인 예매도 한다. 사원을 올라갈 수 있는 표는 인원이 하루 1,200명으로한정되기에 인기가 많은 편이라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아래는 온라인 티켓 판매 주소이다. 일주일 전 자정부터 예매 가능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 2시 되시겠다. 

https://ticketcandi.borobudurpark.com/en/#borobudur

 

Taman Wisata Candi | Experience The Ancient World of Java

PT Taman Wisata Candi Borobudur Prambanan Ratu Boko (persero) is the entity entrusted with the care of Borobudur, Prambanan, and Ratu Boko.

ticketcandi.borobudurpark.com

나는 온라인으로 예매를 한 것이 아니라서 보로부두르 사원에 가서 표를 구했다. 티켓 판매소로 가니 앞에 의자가 몇개 놓여있었고 이미 도착해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매표소 내부에서 번호표를 뽑고 외부에서 대기하다가 자신의 번호를 호명하면 들어가 표를 사는 형식이었다. 

번호표를 뽑았더니 대략 30번대였던 것 같다.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고 내 번호가 호명되어 들어가 표를 샀다. 가이드를 동반하여 사원까지 올라갈 수 있는 표는 가까운 시간대는 이미 매진되어 10시 30분 표가 있는데 가능하냐고 물어왔다. 아직도 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지만 일단 사원을 올라갈 수 있는 표를 구했다. 

 

가이드를 동반하여 올라가는 시간은 10시 30분이지만 6시 30분 부터는 주변은 돌아볼 수 있기에 보로부두르 사원을 향해 걸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이미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꽤 있었고 단체로 관람을 온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단체로 모여 무엇인가 구호를 큰 소리로 외치고 기념사진 찰칵.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텐데 그들의 시간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8-10세기  자바섬에 있었던 샤일렌드라 왕조( Shailendra dynasty )시절에 만들어졌다. 정확한 건립 연도를 알 수 없다는 글들도 있고 750-842년 거의 100년에 걸쳐서 완공되었다는 글도 있다. 한반도 역사에서는 통일신라시대였고 이 시기에 석굴암(751-774년)이나 불국사(751-774년) 등이 지어졌다. 

 

보로부두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언덕 위에 있는 불교사원'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실제로 보면 왜 그러한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사원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작은 산이나 언덕으로 보일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이렇게 거대한 불교 사원은 여러가지 이유로 사람들에게 잊혀져가고 땅 속에 묻힌 채 수세기 동안 어둠 속에서 보내게 된다. 

땅속에 묻혀 있던 보로부두르를 발견한 사람은 영국인 토마스 스탬포드 래플스( Thomas Stamford Bingley Raffles )였다. 영국인으로 당시 자바 총독이었던 래플스는 전해내려오는 고대 사원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탐사 끝에 1814년 보로부두르 사원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지 않은가? 인도네시아는 300년 가까이 네델란드의 식민지였는데 어떻게 인도네시아에 영국 총독이 있을 수 있었을까? 1811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이 잠시동안 네델란드의 식민지였던 자바를 점령했던 적이 있었고 그때 총독으로 온 사람이 래플스였다. 

 

만약 이런 역사적인 사실이 없었다면 보로부두르 사원이 햇볕을 보는데는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로부두르 사원을 만드는데 사용 된 돌의 갯수는 200만개 정도라고 한다. 건설에 걸린 시간은 대략 80년이라 하면 일년 365일 동안 쉬지 않고 하루에 70개에 가까운 돌을 가져와서 쌓아야 한다. 단순히 가져와 돌을 쌓는 것이 아니라 돌에 2,672개의 부조를 새기고 504개의 불상을 만들어 올려두는 작업까지 포함한다면 그 작업의 규모를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보로부두르 사원 전체는 불교적 상징과 부처님의 일대기와 가르침을 새겨놓았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수백개의 부처상 중에서 상당수는 목이 없는 상태로 있다. 자연적인 훼손일수도 있지만 보로부두르 사원을 발견한 이후 상당 기간을 방치 되었기 때문에 문화재 보호라는 생각보다는 고대의 유적에 대한 호기심과 소유욕 등 개인적인 욕망에 의해 보로부두르 사원은 훼손되고 파괴 된 것이다.

함께 간 조코에게 보로부두르 사원에 와 본 적이 있냐고 물으니 학교 다닐 때 와 본 적이 있다는 답변이었지만, 그외의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5년간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공장생활이다보니 다양한 한국어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을 것이고 이로인해 일상회화를 벗어난 전문적인 지식이 동반 된 한국어 표현은 불가하다고 추측이 되었다. 

 

보로부두르 사원을 올라가 보지 않고 아래에서만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는데도 새벽에 너무 일찍 일과를 시작한 탓인지 급피로가 몰려왔다. ㅠ.ㅠ 슬슬 오르기 시작하는 기온도 문제였고....

조코에게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고 사원은 다음 인도네시아 방문시에 올라가겠다고 하고 메라피로 가자고 하였다.

 

만약 다음에 인도네시아에 다시 오게 된다면 발리 일정을 많이 하고 족자에서는 브로모화산 일출과, 보로부두르 사원 일출을 꼭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사원은 다음 여행 시에 올라가 보는 것으로 미루어 두었다. 

 

아래는 보로부두르 사원 이용 약관

이용 약관
고대 자바 건축의 걸작인 보로부두르 사원의 화려함을 탐험해 보세요. 동쪽에서 걸어가다 보면 사원의 전체 구조를 볼 수 있고, 사일렌드라 왕조의 마하라자가 창조주의 위대함을 경배하기 위해 발을 디딘 곳에 서게 됩니다. 부조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고대 자바 문화의 맥락에서 불교 철학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 외국인 관광객(와이즈맨)은 해외에서 온 관광객입니다.
- 성인 외국인 관광객은 10세 이상의 관광객입니다.
- 3세 미만의 어린이는 무료입니다.


일반 이용 약관

- 티켓은 선택한 방문 날짜에 따라 유효합니다.
- 티켓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 티켓은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운영 시간: 화요일~일요일: 09.00-17.00 WIB.
- 보로부두르 사원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까지 올라갈 수 있는 관광객 수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 관광객 수 제한은 내국인 관광객과 외국인 관광객에게 모두 적용됩니다.
- 관광객 수 제한은 교육 목적, 종교 목적, 공식 목적, 관광 목적의 모든 관광객에게 적용됩니다.
-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것은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물 구역의 수용 가능 인원에 따라 인파를 관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까지 올라갈 수 있는 관광객 수는 1일(09:00~17:00 WIB) 1,200명으로 제한됩니다.
- 하루 관광객 수를 1,200명으로 제한되며,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에는 1회에 최대 150명까지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에 올라가는 관광객에게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관광객이 선택해야 하는 방문 테마가 제공되었습니다. 하루에 두 가지 방문 테마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보로부두르 사원의 기념비와 안뜰에 올라가는 관광객의 방문 요일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입니다.
- 매주 월요일은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 방문이 금지되며(사원 청결 유지), 관광객은 공원 내 2곳만 방문할 수 있습니다.
- 관광객 수는 다음과 같이 8개의 방문 세션에 따라 조절됩니다:
08:30 세션, 관광객은 09:00 - 10:00에 사원에 올라갑니다.
09:30 세션, 관광객은 10:00 - 11:00에 사원을 올라갑니다.
10:30 세션, 관광객들은 11:00 - 12:00에 사원을 올라갑니다.
11:30 세션, 관광객들은 12:00~13:00에 사원으로 올라갑니다.
12:30 세션, 관광객들은 13:00 - 14:00에 사원에 올라갑니다.
13:30 세션, 관광객들은 14:00 - 15:00에 사원을 올라갑니다.
14:30 세션, 관광객들은 15:00 - 16:00에 사원을 올라갑니다.
15:30 세션, 관광객들은 16:00 - 17:00에 사원을 올라갑니다.
-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를 오르는 모든 관광객은 관리자가 결정하고 제공한 특수 신발(우파낫)을 착용해야 합니다.
-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에 오르는 개인 및/또는 단체 관광객은 반드시 제공된 가이드와 동행해야 합니다(가이드 1명이 최소 10~15명의 관광객을 안내).
- 개방형 복장(무릎 위 바지 또는 치마)을 착용하는 모든 관광객은 관리자가 제공하거나 대여해 주는 천 커버를 착용해야 합니다.
- 관광객은 흰색 옷을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도착 조건

- 관광객은 온라인 또는 현장 구매 또는 예약을 통해 얻은 티켓을 제시해야 합니다.
- 온라인 티켓은 리셉션 구역, 즉 국제 관광 카운터에 있는 직원의 확인을 받습니다.
- 온라인 티켓을 확인한 후 관광객은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물에 입장할 수 있다는 표시로 특별한 팔찌 또는 손목밴드를 받게 됩니다.
- 관광객은 대기실에 입장할 수 있으며 티켓 구매 시 선택한 사이즈에 따라 특별한 신발을 받게 됩니다.
- 대기실에 있는 동안 관광객은 안내소부터 사원까지 동행할 가이드(파몽 까리따)를 소개받고, 방문객이 선택한 테마에 따라 사원 기념물에서 설명을 듣게 됩니다.
- 가이드(파몽 카리타)와 특수 신발(우파낫)은 관광객에게 제공되는 편의 시설입니다. 가이드/파몽 까리따 시설의 기본 언어는 인도네시아어와 영어이지만, 영어 이외의 언어를 구사하는 가이드가 필요한 경우(요청 시) 가능합니다.
- 가이드 또는 파몽카리타 한 명이 최소 10명에서 최대 15명의 관광객을 안내합니다.
- 고객 서비스 담당자가 가이드의 요구 사항, 언어 요구 사항 및 특수 신발/우파나트 요구 사항에 맞게 관광객 그룹을 배치하고 나눕니다.
- 최소 인원수인 10명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다른 관광객과 합류하지 않으려는 관광객은 개인 가이드/파몽카리타 옵션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 개인 가이드(파몽 카리타)는 국내 여행객의 경우 1인당 IDR 20,000(2만 루피아), 외국인 여행객의 경우 1인당 IDR 30,000(3만 루피아)의 추가 가이드 요금이 부과됩니다.

보로부두르 사원 이용 약관


-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에 오르기 전에 모든 관광객은 도착 시 배포된 특수 신발(우파낫)을 착용해야 합니다.
- 우파낫을 착용할 수 있는 장소는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로 올라가는 계단 앞입니다.
- 관광객들은 동쪽 정문을 통해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를 올라가고, 서쪽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를 통해 내립니다.
- 보로부두르 사원 계단을 오르기 전에 서비스 담당자가 팔찌 또는 손목밴드를 스캔하여 해당 관광객이 사원에 올라갈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확인하고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를 올라간 관광객의 수를 점검합니다.
-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탑에 머무르는 시간은 사원 기념탑 계단 오르기 시작부터 최대 1시간입니다.
-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물에 있는 동안 관광객은 가이드 또는 파몽 카리타가 정한 경로, 설명, 소요 시간을 따라야 합니다.
- 관광객은 티켓 구매 시 선택한 테마나 스토리에 따라 안내를 받고 설명을 듣게 됩니다.
- 사원 기념물 구역의 관광객 방문 최대 한도는 9층 또는 테라스입니다.
-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물 구역에 있는 동안 관광객은 음식물 섭취, 흡연, 쓰레기 투척, 사원 벽 오르기, 부조물 만지기, 사원 돌에 낙서하기, 드론 날리기, 애완동물 동반, 날카로운 무기 소지 등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에서 내리면 서비스 담당자가 팔찌나 손목밴드를 스캔하여 기념비에서 내리는 관광객 수를 확인합니다.
- 보로부두르 사원 기념비에서 내려 온 관광객은 특수 신발(우파낫)을 각자의 신발이나 샌들로 교체할 수 있습니다.
- 특수 신발(우파낫)은 선물 또는 기념품으로, 관광객은 집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 관광객은 흰색 옷을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로부두르 사원을 나와 메라피로 가기로 했다. 새벽에 도착 했을 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던 주차장 주변 상점들 대부분이 문을 열어두고 관광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통과하도록 되어 있는 시장 골목이지만 지나가거나 구경하는 손님들에 대한 호객 행위가 없기에 별다른 부담없이 지나가면서 구경을 하면 된다. 

보로부두르에서 메라피를 향해서 출발을 한 시간은 오전 9시 전후였다. 

차도에서 보이는 수많은 오토바이에는 어느정도 익숙해 졌다. 간혹 인근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나온것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학교 주변 상점에서 먹거리를 사고 있는 모습들이 생소하다면 생소하달까? 내 기억으로는 우리나라 학교의 경우 아침에 등교를 하면 하교 할 때까지 학교 담장 밖으로 나올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등교시에 활짝 열려있던 커다란 교문이 등교시간이 끝나면 굳게 닫히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몇몇 학생들이  교칙에 위반되는 월담을 하긴 했지만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래서 메라피 화산으로 가는 동안에 거리에서 본 학생들의 모습이 생소하게 다가 온 것 같다. 

미리 여행사를 확인 해 둔 듯 운전기사 조코는 차를 달려 메라피 화산 인근의 여행사에 10시 15분경 도착했다. 보로부두르사원에서 1시간 10여분이 걸린 듯 했다. 

 

여행사의 대부분을 이루는 넓은 주차장에는 짙은 카키색 짚차들이 여러대 주차를 하고 있었고 그 주변에 몇몇 기사겸 가이드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무실로 가서 메라피 화산 투어 상품을 선택했다. 몇몇 옵션에 따라 투어소요시간과 비용이 달라지는데 나는 3시간 정도 소요되는 상품을 골랐다. 

비용은 500,000만 IDR. 한화로는 43,000원 정도이다. 비용은 현금으로만 계산이 가능하다고 했다. 여분의 현금을 소지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현금을 찾으러 ATM이 있는 곳까지 갔다 올 뻔 했다. 인근 업체 전체가 현금만 계산하는지 아니면 이 업체만 현금을 받는지는 알지 못한다. 해외 여행시에는 만일을 대비해 얼마간의 현금은 항상 소지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현금을 지불하고 가이드겸 기사를 배정 받았다. 이곳의 짚차는 조금은 칙칙한 느낌의 어두운 카키색 위주였지만 메라피 투어를 하기 위해 이동 과정 중에 중간중간 보여지던 다른 여행사의 짚차는 사진빨 잘 받을 것 같은 빨갛고 노란 원색의 짚차들도 있었다. 여행사가 한 곳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사전에 좀 더 많이 알고 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짚차에는 안전벨트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대충 머리를 구겨넣어야하는 헬멧이 유일한 보호장구였다. 비포장 도로나 커브길도 중간중간 존재하기에 짚차가 달리는 도중에는 차량에 붙어있는  손잡이를 꽉 움켜 쥐어야한다. 

인도네시아 여행시에 한번쯤 고려하거나 실제로 가 보는 화산 투어. 현재 전세계에 있는 활화산 수는 대략 850개 정도. 이 중에서 147개 정도가 인도네시아에 있으니 과히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화산 보유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메라피 화산은 수년을 주기로 폭발을 반복하여 그 중에서도 활동이 활발한 화산 중의 하나이다. 

 

1990년대 이후 메라피 화산의 대표적인 폭발사례는 

- 1994년: 60명 사망, 14,000명 대피
- 2006년: 2명 사망, 25,000명 대피
- 2010년: 353명 사망, 350,000명 대피
- 2020년: 1명 사망, 2,500명 대피
- 2021년: 4명 사망, 1,000명 대피

- 2023년 12월 : 22명 사망자가  발생한 수시로 폭발하는 화산이라는 점이다.  

 

투어의 첫 시작은 유적 발물관( SISA HARTAKU)이었다. 2010년 11월 5일 대폭발로 350여명이 생명을 잃었으며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였는데 그날의 상흔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박물관은 메라피 화산에서 직선거리로 7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2010년의 대폭발은 11월 5일에 있었지만 실제로 화산의 활동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그해 9월 중순부터였고  주변의 주민들에 대한 대피령도 내려졌다. 하지만 여러차례 폭발이 일어났다 잦아드는 것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긴장감이나 위기감도 점차 완화되었고 대피를 했던 사람들도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폭발에 둔감해지게 된다. 

유적 박물관의 시간은 2010년 11월 5일에 여전히 멈추어 있다. 

사실 어떤 위험이 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둔 채 피난을 떠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것이다. 화산이 아니더라도 화재나 수해의 현장에서 자신의 재산이나 귀중품을 지키기 위해 대피를 미루다 생명을 잃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안전불감증이라고만 탓하기에는 목숨보다 귀중한 것은 없지만 목숨만큼이나 귀중한 것들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선택을 마냥 탓하기만 하기도 어렵다. 분명 이성적으로는 피난이 최우선이지만 감정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운이 좋아 메라피 화산이 조용한 날에 이곳을 보고 있지만 언제라도 메라피가 폭발을 일으키면 관광을 하다가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화산 투어 중에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을 한다. 

 

대표적인 것이 2019년 12월에 뉴질랜드 화이트섬에서 있었던 폭발 사고. 이 사고로 당시 화이트섬을 관광 중이던 관광객 21명이 희생되었다. 마그마가 압력에 의하여 분출되는 대부분의 화산 폭발은 사전에 이상 징후로 파악이 가능하여 화산으로부터 수 km이내의 접근이  통제되지만, 마그마의 변화보다는 수증기가 응축되어  폭발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사전에 감지가 어려워 미처 대비하지 못한 관광객들의 피해가 커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그날의 상처가 남긴 깊게 파인 흉터를 마주하는 일은 관광객의 입장에서도 찹잡함을 넘어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마음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와 짚차가 있는 곳으로 향하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뜻 모를 구호를 소리높여 외치고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산과 함께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화산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 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통일전망대에서 북녁 땅을 바라보며 느끼는 불안감이 내가 메라피에서 외국인으로 느끼는 감정과 같은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두번째로 이동한 곳은 BATU ALIEN( 외계인 바위)라는 곳이다. 

화산이 폭발하면 많은 양의 화산재의 분출량과 화산재가 솟구치는 높이를 가지고 화산의 폭발력을 표시하는 화산폭발지수(VEI, Volcanic Explosivity Index)라는 것이 있다. 0단계부터 8단계까지 9단계로 나누어져 있고 각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폭발력은 10배씩 증가한다. 즉 0단계에 비해서 1단계는 폭발력이 10배. 2단계로 가면 100배가 되는 식이다.

 

2010년 메라피 화산의 폭발지수는 4단계 정도였다. 화산재가 성층권인 10km-25km 정도까지 올라갈 정도의 폭발력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서 덧붙이자면 946년에 있었던 백두산의 화산폭발지수는 가장 강력한 폭발의 바로 아래 단계인 VEI 7이었다. 이 정도의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 화산이 위치한 지역 뿐이 아니라 전세계적 재앙이 도래하게 된다. 

 

또 용암도 수 km까지 흘러내려왔고 외계인 바위도 그 당시에 용암에 휩쓸려 내려와 지금의 자리에 자리잡았을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바위 밑에는 민가도 있었는데 그냥 화산재에 묻혀 있는 상태.

 

바위의 모습이 눈, 코, 입이 있는 외계인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서사가 곁들여지지 않았다면  그냥 바위덩이 몇개가 자리잡은 곳으로 여길 정도의 관광지. 

하지만 이곳에서 주위를 돌아보면 바위 이외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2010년 폭발 당시 흘러내린 용암은 600~800℃ 정도의 고온을 품은채  최대 18km까지 흘러갔고 그 당시 흘러내린 용암으로 인해 지형이 변할 정도였다. 

 

계곡이 되어버린 그곳에는 화산재가 섞인 토양을 건설자재로 쓰기 위한 트럭들이 드나들고  트럭이 도착을 할 때마다 몇몇 작업자들이 바구니에 흙을 담아 트럭을 가득 채우기를 반복한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트럭을 채우는데는 5명 정도가 2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고 그들이 받는 노임은 내가 귀를 의심 할 정도로 낮았다. 

화산이 많은 것을 빼앗아 갔지만 또 한편으로는 화산 인근에서 농업, 관광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BUNKER KALIADEM

 

화산대피소 주변에는 기념품과 음식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2010년 메라피 화산 폭발 당시 2명이 대피소로 피했지만 용암의 뜨거운 열은 피하지 못해 안타깝게 사망한 장소이다. 내부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존하기에 어두웠고 사진으로 남길만한 것이 별로 없는 장소였다. 

 

화산이 폭발하면 가장 먼저 덮치는 것이 그 폭발력으로 지표면에 있던 흙이나 돌, 바위 등이 주변으로 날아가게 된다. 대피소는 이러한 사방에서 날아오는 돌이나 바위 등을 피하기 위한 용도이지 용암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용암이 흘러나와 공기와 맞닿아 금방 분화구 인근에서 굳어버릴 것 같지만 수백도의 온도를 가지고 지구 내부에서 많은 양이 분출하는 관계로 산의 경사면을 따라 수 km를 흘러간다. 용암의 점성에 따라 속도도 다르겠지만 2010년 메라피 화산 폭발당시 평균적으로 시속 1km 정도 최대 속도는 시속 5km 정도였고 최소 속도는 0.1km 정도였다고 한다.

 

그 당시 벙커에 피한 사람들은 대피소에서 일단 화산재를 피하고 잠잠해지면 다른 장소로 대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분화의 경우 수일에서 수주 지속되는 관계로 메라피 화산에서 4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이곳 대피소에서의 대피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 웅덩이로 가서 시원하게 물벼락을 맞는 시간이 주어진다. 건기라서 그런지 물이 많지 않아 개울 같은 그곳에서 짚차로 물 웅덩이에 두어번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끝이긴 하지만 메라피 화산 투어 내내 가지고 있던 조금은 무거운 기분을 탈탈 털어버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몸은 젖더라도 카메라 가방만은 사수하고 싶었는데 낡은 짚차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물이 들어와 가방에도 물이 묻었지만 다행히 어느정도의 방수기능을 하는지라 다행이었다. 

 

투어는 대략 2시간~2시간 30분 정도 진행되었다. 

 

그후 숙소로 돌아왔다. 뜻하지 않게 새벽잠을 설친 탓에 피곤했는지 메라피화산에서 족자까지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한장도 남기지 못했다. 정말 만사가 귀찮았나보다. 숙소에서 쉬면서 내일은 자카르타로 떠나야하는 날이기에 가루다 항공 앱에 들어가 웹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새벽에 욕야카르타(YIA)공항으로 가기 위해 기차표를 다시한번 확인했다. 예약은 이미 이틀전에 해 두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전 족자역까지 한번 걸어가서 시간이 어느정도 걸리나 확인을 해 보기로 했다. 도착한 날은 숙소를 찾느라 멀게 느껴졌던 거리였는데 다시 걸어보니 생각보다는 가까운 거리였다. 걸어서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저녁은 이미 온 적이 있는 KARTA COFFEE&EATERY에서 먹었다. 맥주 한잔과 AYAM BAKAR BUMBU BALI라는 닭요리를 시켰다. BALI라는 단어에 이끌려 시킨 음식인데 입맛에 착 달라붙는 맛은 아니었다.

가격은 BINTANG CRYSTAL PINT  45,000 IDR , AYAM BAKAR BUMBU BALI  45,000 IDR이었고 서비스료 4,500 IDR 그리고 세금이 9,450 IDR. 전부해서 104,000 IDR을 계산했다. 한화로는 약 8,900원 정도. 

 

족자 여행의 마지막 밤. 말리오보로 쇼핑몰 앞에 놓여진 벤치에 앉아 어둠이 내려 온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마차와 간간이 지나다니는 버스를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