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동물원&야생공원/인도네시아 여행

인도네시아 여행 (13) 족자카르타 3일차 - 따만사리(Tamansari, Water Castle), 빠랑뜨리띠스 해변(Parangtritis Beach)

반응형

족자 3일차 일정은 오전에는 걸어서 따만사리까지 다녀 오기로 했고, 오후에는 빠랑뜨리띠스 해변을 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숙소에서 따만사리까지는 걸어서 30분 내외가 나오기 때문에 더운 날씨가 걸림돌이 되기는 하지만 충분히 걸어갈만한 거리라고 생각이 되었다.

족자에서의 3일째 어느 사이에 나는 족자 거리풍경에 빠르게 적응 해 가고 있었다. 거리에서 마주하는 나와 다른 피부색, 한,중,일 극동의 사람들과는 다른 그들의 생김새, 옷차림, 거리의 마차, 여성들이 얼굴에 두른 히잡, 길거리에 앉아 나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지만 눈빛은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걸인들. 이 모든 것들이 낯섬에서 익숙함으로 변해갔다. 

족자에서는 나름 번화가인 까닭에 걸어가는 도중에 마주하는 풍경들은 도시적인 느낌이고 거리도 깨끗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더워지는 기온이 나를 괴롭히지만 않았다면 아주 느릿느릿 길거리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었겠지만오전 10시가 넘어가자 이미 30℃에 가까운 더위는 내 몸의 땀구멍들에서 연신 땀을 뿜어내도록 만들었다. 

 

역시 새벽이나 저녁처럼 해가 없는 상태에서의 도보는 괜찮지만 해가 뜬 상태에서의 도보는 무리라는 생각이 다시한번 머리 속에 박히며 돌아갈 때는 반드시 차를 타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

 

거리에서 뜻하지 않은 낯선 풍경을 마주하면 잠시 더위를 잊고 멈추어 서서 구경하며, '걷지 않았다면 이런 것을 내가 어떻게 볼 수 있었겠어? '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구글앱에 의존해서 따만사리와의 거리를 많이 좁혀졌을 즈음 길에서 어떤 분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온다. 한국이라고 대답을 했더니 '신태용'이라는 단어를 던져온다. 마나도에서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신태용'이라는 단어가 자동적으로 되돌아왔는데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 신태용 감독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된다. 

 

신태용이라는 단어에 반응을 하자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네며 커피 좋아하냐고 물어온다. 커피 자체는 좋아하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자기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을 하고 가라고 한다. 무더위 탓에 어디 잠깐 들어가서 더위를 식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흔쾌히 승락하고 그를 따라 골목골목을 지나니 정말 그가 말한 카페가 나왔다. 

 일반 가정집을 개조하여 카페형식으로 만든 듯 하고 가족들이 운영을 하는 듯 했다. 아빠는 길거리 영업, 엄마는 사장님, 딸은 서빙 ^^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루왁커피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고 한켠에 놓여진 철창안에는 말로만 들어 본 사향고양이 한마리가 힘없이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철창 안에 갇혀있는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한 열매를 가공하여 루왁을 직접 생산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향고양이는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전시를 하고 루왁커피는 다른 곳에서 가져오는지는 알지 못한다. 어차피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최대한 내가 듣기 불편하지 않을 방향으로 이야기를 해 줄테니까.

사진은 사향고양이가 배설하여 오물이 묻어있는 커피콩. 이를 깨끗이 씻고 말리고 볶아 루왁커피가 완성된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커피 생산량은 세계 4위 수준이다. 브라질이 37% 정도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베트남이 17%정도로 2위 , 9% 정도의 콜롬비아가 3위이고 7% 정도의 인도네시아가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디오피아는 4% 정도로 5위. 

 

인도네시아에서 커피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네델란드의 식민지화가 진행되었던 1690년대 말 부터였는데 인도네시아의 입장에서 보자면 커피는 슬픈 역사의 한 단면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루왁커피의 경우에도 네델란드 식민당시 커피 농장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인들은 채취하거나 마시지 못하게 했었는데 야생의 사향고양이들이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물에 소화되지 못한 커피콩이 섞여 나오는 것을 알고 이를 몰래 가져다가 먹기 시작했고 그 맛이나 향이 일반커피와 달라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 루왁커피에 얽힌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루왁커피, 와인커피였는데 루왁의 경우 100g에 450,000 IDR( 한화 약 38,000원 )이었다. 한국에서 커피원두 1kg 정도가 1만~4만원대까지 판매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루왁커피는 진위성 여부나 맛의 가치 여부를 떠나 가격대가 엄청나게 쎈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이곳에서 커피를 마셔보기로 하고 커피를 시켰다. 커다란 주전자에 커피가 담겨져 나왔는데 족히 3-4잔은 되는 것 같은 혼자서 마시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나홀로 여행객이 아닌 3-4명의 일행들일 경우에는 넉넉히 한잔씩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양.  

 

맛은 글쎄.... 인터넷상에서 루왁커피맛을 표현한 것들을 보면 초콜릿맛, 카라멜맛, 과일향 어쩌고 하는데 이런 맛은 잘 모르겠고 그냥 다른 커피에 비해서 좀 부드럽다는 느낌이다. 이 부드럽다라는 표현이 맛이 연하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진한 커피인데도 그리 쓰지 않은 것. 

나 역시도 인도네시아 여행지는 물론이고 전세계 인터넷 쇼핑몰에 뿌려진 루왁커피를 생산하려면 도대체 몇 마리의 사향고양이가 필요할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인도네시아의 루왁커피 생산량이 일년에 500kg 정도 된다는데 세계적인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도 없는 양일 것이기 때문이다. 

 

루왁커피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 중에 일부 아니 대부분은 가짜일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든 태국이든 동남아 여행시에 맛보는 커피 맛은 한국에서 즐겨먹는 커피 맛과는 다른 맛이 들어가 있다.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처음 방문지였던 술라웨시섬, 두번째 방문했던 발리섬, 세번째  방문했던 자바섬 모두 커피로 유명한 곳이었고 공항 면세점에서도 루왁커피를 판매하고 있을 정도로 인도네시아의 커피 그중에서도 루왁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상품 중의 하나이고, 여행을 다녀와 지인들에게 나 인도네시아 갔다왔는데 이거 한번 먹어보라고 건네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선물 아이템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이곳 한켠에는 인도네시아 전통 방식으로 그린 그림들도 전시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부터 느낀 것이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미술에 엄청 진심이라는거다. 그림이나 조각 작품을 판매하는 화랑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족자에서 따만사리를 가려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을 따라 들어간 카페에서도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림들은 일반적인 붓과는 다른 형태의 전통적인 도구로 그려진다. 타만사리 인근이 전통 바틱제품과 전통회화, 공예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한다.

커피도 마시고 그림도 보다 보니 땀도 어느정도 식었고해서 원래 목적지인 따만사리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구글맵이 일러주는대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니 따만사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왔다.

따만사리는 족자카르타 술탄국의 1대 술탄인 하메닝쿠부우노 1세(Hamengkubuwana I)가 1758년에 착공하여 1765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당시 네델란드가 활발히 인도네시아를 식민지화 시키려고 하고 있던 시기였고 그에따라 족자의 술탄국과 네델란드가 가예탕 조약( Perjanjian Giyanti )을 맺어 1755년 부터 네델란드의 식민지배를 받기 시작한 시기와 겹쳐있으니 건축양식은 당연히 서양풍이 깃들려져 있다.

물의 궁전이라고도 불리는 왕실의 목욕탕. 이곳에서 목욕하는 왕비와 후궁들을 보면서 왕이 침소에 들 후궁을 점찍었다는 장소( 어딘가에서는 왕이 장미꽃을 던지면 그것을 받은 왕비나 후궁이 왕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설도 있다)인데 어디까지가 정사이고 어디까지가 야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왕실에서 흔하게 있었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것 일수도 있고 어쩌다 한번 있었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일수도 있고 또 어쩌면 있지도 않았던 이야기가 왕실의 목욕탕이라는 이야기에 상상력이 발휘되어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관광객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따만사리에 대한 훨씬 큰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도대체 어떤 형태의 목욕탕이길래?

 

나 역시도 여행 전 읽었던 따만사리에 관한 몇몇 글들 중에서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후궁', '목욕탕', '왕' 이런 단어들만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었고, 다른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이 단어들을 기억했다 또 다른이들에게 전해 줄 것이다.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따만사리를 짓기 시작한 시기는 1758년이었다. 가예탕 조약으로 네델란드의 보호국이 된 1755년부터 막 3년이 지난 시기였다는 이야기다. 조약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두 나라의 동등한 지위로 이루어진 조약이라기 보다는 족자카르타 술탄국은 이 조약을 통하여 외교권과 군사권을 네델란드에 넘겨주게 되고 급속하게 국력이 쪼그라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만사리를 지어진 전후 역사를 보면 따만사리에 대해 조금은 더 알 수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뒤적여 보았다. 

 

족자카르타 술탄국을 세운 하메닝쿠부우노 1세는 마타람왕국의 왕자였다. 우리나라의 역사로 비교하자면 조선 이전에 고려가 있었듯이 족자카르타 지역에도 족자카르타 술탄국 이전에 마타람 왕국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마타람 왕국이 있을 당시 이곳을 지배했던 왕은 파쿠부워 2세( Pakubuwono II )로 훗날 족자카르타 술탄국을 세우고 왕이 되는 망쿠부미 왕자(훗날 족자술탄국의 왕인 하메닝쿠부우노 1세가 됨)의 형이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네델란드는 동인도회사를 내세워 인도네시아의 땅들을 야금야금 식민지화 시키고 있던 때였는데 파쿠부워 2세는 동인도회사와 협력하기로 하고  마타람 왕국의 땅의 일부를 양도하기에 이른다. 

 

이에 반발하여 동인도회사에 반발하는 민중봉기가 일어났고 망쿠부미 왕자는 왕에게 등을 돌리고 민중의 편에 서서 네델란드와 맞서 싸우게 된다. 형제의 난이라고 보면 되겠다. 수년간 걸쳐서 진행 된 반발과 봉기에 네델란드는 이를 해결 할 타개책으로 분리정책으로 족자카르술탄국과 수라카르타 수나국으로 2개의 왕국이 족자의 영토를 분리해서 지배하게 만든다. 

 

침략국 네델란드에 협조하자는 쪽과 네델란드를 몰아내야한다는 두가지 세력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사이에 네델란드는 두 개를 각각 분리하여 왕국의 힘을 빼는 전략을 취하고 결국 급속도로 족자에서 네델란드의 영향력이 커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만든 것이다. 

 

따만사리가 세워진 시기는 족자카르타 술탄국이 막 시작되었던 시기와 맞물려 있으니 당연히 서양건축 양식이 적용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새로운 왕조의 근엄함과 위엄을 알리는 건축물인지 아니면 이미 네델란드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족자술탄국왕에 대한 선물인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일부 자료에는 네델란드 식민지배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요새를 휴양시설처럼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 

네델란드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식민지배가 300년 이상이 되기 때문에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은 지워지고 왜곡되어 졌을 것이고 그때의 역사적 진실은 어쩌면 이곳을 지키고 있는 따만사리만이 알고 있을것이라는 생각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적 사건의 뒤편에는 그 당시를 살았던 일반인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또다른 진실들이 존재했을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외부로 나와 성곽이라고 해야할지 담이라고 해야할지 눈에 보이는 구조물이 있어 계단을 올랐다. 아마도 이런 구조물 때문에 요새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것 같다. 

올라가보니 현재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들의 붉은 지붕과 거의 맞닿아 있어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목욕탕이라는 것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따만사리는 왕실의 정원이나 휴양지이고 원래는 지금 관람객들이 오가는 곳보다 훨씬 넓고 규모도 컸을 것이다.

 

물의 궁전과 마을의 경계가 모호하여 어디까지가 마을이고 어디까지가 왕가의 놀이터였는지 모를 그곳을 서서히 벗어나려 하다가 아쉬움이 남아 다시 주변을 돌아본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한켠에 서있는 푯말 하나를 마주한다. 인도네시아어로 되어 있어 내용을 알 수 없어 번역기를 사용하여 확인을 해 본다. 눈에 확 띄게 들어오는 경고성 그림이나 경고나 강조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빨강색으로 쓰여진 글씨체가 없어 인도네시아어를 모르는 여행객들이라면 그냥 지나칠법한 푯말에 쓰여진 내용은 이렇다. 

 

- 정부의 허가없이 문화재를 훼손, 휴대, 탈취, 이동, 형상/색상 변경, 분리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 이 조항을 위반하면 최대 10년의 징역 또는 최대 100,000,000 IRD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 1992년 제정된 법률 제5호 26조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명한 관광지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수 많은 사람 중에는 금지 된 행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장 흔한 행위가 자신의 이름을 낙서로 남기거나 새겨넣는 행위.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문화재를 훼손했을 경우에는 꽤 중한 벌을 받게 되기에 국내외 여행시 문화재를 관람할 때는 눈으로만....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문화재 훼손의 경우 문화재 관리법에 의거하여 징역 2-3년 정도의 실형을 살거나 수천만원의 벌금을 각오해야 한다. 

정오가 가까워진 탓에 무척이나 무더웠지만 내가 이번 여행을 끝나고 돌아가면 언제 또다시 인도네시아 족자를 방문 할 기회가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찬찬히 여기저기를 살폈다. 

이제 따만사리를 벗어나 마을 골목길로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여기저기 돌다보니 처음 이곳으로 접어들었던 길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나온 듯 내가 그냥 지나쳤을리 없는 멋진 그림들이 그려진 곳을 지나게 되었다. 동남아에 가면 유독 그래피티가 그려진 곳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주거지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아파트는 이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단독주택이 많은 곳에서도 벽에 그림을 그려놓는 곳은 쉽게 접하지 못한다. 물론 각 지역마다 지자체에서 관광홍보 차원에서 벽화마을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동남아의 경우에는 그냥 하나의 문화처럼 그래피티를 집이나 건물의 담이나 건물 외부에 그려두는 것 같다. 

인도네시아 전체가 그림이나 그래피티에 진심이냐하면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공항에 있는 소화기 하나하나에 그려진 그림으로서 알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도착했을 때는 밤 늦게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밟느라 정신없이 보낸 관계로 주변을 돌아 볼 사이가 없어서 못 보고 지나간 듯 한데, 족자에서 자카르타에 갈 때는 한낮에 도착하였고 또 국내선인지라 어느정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주변을 돌아 볼 수 있었는데 유독 눈에 띈 것은 공항 여기저기 놓여진 소화기였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정도였는데 대부분의 소화기 주변에 그려진 그림은 이 분들 정말 그림에 진심이네. 라는 생각이 일어나기에 충분했다. 

 다시 따만사리를 빠져나오는 골목길로 돌아와서 여러가지 그림을 접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끄는 그림은 어느 가정집으로 보이는  목조 대문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골목을 벗어나며 고젝으로 차량을 불렀다. 따만사리에서 말리오보로에 있는 숙소까지는 16,500 IDR을 요금으로 지불했다. 원화로는 1,400원 정도 

숙소에 들어가기 전 말리오보로몰 2층에 있는 음식점인 KARTA COFFEE & EATERY라는 곳에 갔다. 이곳에는 말리오보로 거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좌석이 있다. 물론 실내보다 조금 덥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리를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랑 차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먹은 음식은 나시고렝(볶음밥)과 레몬에이드. 가격은 72,800 IDR ( 한화로는 6,200원 정도 ) 물론 이것은 서비스료와 세금이 포함 된 가격이다. 

나시고렝 즉 볶음밥에 새우칲이 올려져 있는 점이 생소하기는 하지만 나시고렝에는 새우칲과 반숙 계란후라이가 올라가는 것이 거의 기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야시장의 포장마차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메인요리와 음료를 시키는 것이 국롤처럼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우리처럼 공짜로 물을 주는 가게가 없었던 것 같고, 밑반찬을 기본으로 깔아주는 가게도 당연히 없어서  음료나 맥주를 자연스레 주문하는 것 같다. 

 

물과 밑반찬 인심은 한국이 전세계 최고인 듯 하다. 한국에서 돌솥밥이나 산채나물정식 이런 거 하나 시키면 기본으로 깔아주는 반찬이 4-5가지는 기본에다가 어떤 곳은 이보다 더 주는 곳도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국의 음식 물가와 외국의 음식물가를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힘든 부분도 있다고 생각이 된다. 물론 최근의 음식 물가 상승을 보자면 언제인가는 밑반찬은 필요없으니 혹은 필요한 것만 돈을 지불할테니 주메뉴 가격이나 내려달라는 요구가 나올지도 모를일이지만 말이다. 

 

점심을 먹고 숙소에 들어와 간단히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딩굴거리면서 오후 여행지인 빠랑뜨리띠스 해변(Parangtritis Beach)에 대해 소개 된 몇몇 블로그 글들을 읽었다. 

일몰 시간에 맞추어 가기 위해 중간중간 고젝앱에 들어가 보았다. 2시 30분 정도에 확인한바로는 171,000 IDR이었는데 최종적으로 내가 이용한 230,500 IDR이었다. 

 

고젝이나 그랩이나 시간에 따라 요금이 수시로 변한다. 

 

 

말리오보로에서 출발한 시간은 15:30분 정도 였고 해변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40분 정도 되었다. 유명 해변 주변에는 숙박시설이나 상가들이 줄지어 있지만 이곳은 몇몇 노점들을 제외하고는 그럴싸한 상업시설은 아직 자리잡고 있지 않은 해변이었다. 

 

발리 일정을 우붓에서만 머문 탓에 발리의 주요 해변이 어떤 풍경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에 다녀왔던 코타키나발루의 탄중아루 해변만 보더라도 주변에는 숙박시설들과 해변 카페들이 있었는데 이곳은 그런 분위기하고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해변은 꽤 길고 밀려드는 파도도 꽤 강한 듯 했다. 예전에 탄중아루 해변에서 느꼈던 것은 어떻게 바다가 이렇게 잔잔할 수 있냐는 것이었는데 빠랑뜨리띠스 해변은 그보다는 좀 더 강한 파도가 쉴새없이 해변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눈에 띈 것은 해변을 달리는 마차들. 

 

보로부두르 사원, 빠랑뜨리띠스 해변 , 말리오보로 거리. 족자의 주요 관광지에는 마차가 있는 것 같고, 족자 사람들 마차 엄청 좋아하는 것 같다.

 

생각보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지인들이었고 외국 관광객들은 별로 없었는데 아마도 족자의 주요 관광지가 보로부두르 사원, 프람바난 사원, 따만사리와 왕궁 그리고 말리오보로 거리가 주로 소개되어서 그런 것 같다. 

 

이곳의 모래도 약간 검은 편이고 우리나라 일반적인 해변에서 보는 것처럼 발이 모래에 푹푹 빠지는 해변하고는 굳기가 다르다.  탄중아루 해변과 흡사하여 이렇기 때문에 마차가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가능한 것 같다. 

해변에서는 일몰을 기다리며 군데군데 연을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바닷 바람이 강해서 그런지 연은 높이높이 날고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을 했다면 해변에서 하늘 높이 연을 날려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서서히 해가 기울었고 바닷가에도 어둠이 내렸다. 이번에도 불타는 하늘은 보지 못했지만 파도 소리, 바닷바람, 해변을 달리는 마차 모든 것이 좋았다. 

 

올 때 타고 왔던 차량 기사님이 갈 때는 고젝앱으로 차를 부르기 힘들것이라하며 일몰을 볼 때까지 기다려 줄테니 요금은 올 때 요금을 지불해 달라고 해서그렇게 하겠냐고 하였다. 기사 말처럼 고젝앱으로 차를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확인은 할 수 없지만, 주변에 상가나 숙소가 있는 곳이 아닌 해변인지라 일몰 후에는 모든 것이 어두워지고 조용해지는 해변인지라 인적 드문 곳에서 설사 차량을 부를 수 있다 하더라도 기다리는 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리오보로 거리로 돌아왔다. 

저녁은 말리오보로몰 맞은 편에 있는 버거킹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내가 시킨 메뉴는 BBQ BEEF COMBO를 시켰는데 이곳에서 COMBO(한국의 세트 메뉴)를 시키면 밥이 따라서 나오는 것이 특이했다. 메뉴 구성은 햄버거 + 밥 + 치킨 한조각 + 콜라 

 

가격은 51,000 IDR 이었다. 한화로는 4,300원 정도. 프렌치 프라이로 할거냐 밥으로 할거냐 묻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는 밥이 기본인 것 같다. 치킨의 맛은 짭조름해서 밥이랑 먹기 딱이다. 

 

 

 내일은 보로부두르 사원과 메라피 화산을 가기로 한 날이다. 어제 저녁에 만났던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운저사에게 부탁을 하여 새벽에 출발을 하기로 했지만 일출이라는 것이 새벽에 간다고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닌 듯 하여 편하게 여행하기 위해 7시까지 오라고 왓츠앱으로 남겼다. 인도네시아어로 번역까지하여 대화를 남겼지만....-_-;;;;